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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44 러일전쟁과 일본 해군 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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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러일전쟁과 일본 해군 망루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군대로 궁궐을 포위하고 남산에 23여단 사령부를 설치했다. 2월 23일 대한제국 정부를 협박하여 ‘일본이 군략상 필요한 지점을 수용하여 사용한다’는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했다. 
 제4조. 제3국의 침해나 내란으로 인하여 대한제국의 황실 안녕과 영토보전에 위험이 있을 때 대일본제국 정부는 속히 임기응변의 필요한 조치를 한다. …… 대일본제국 정부는 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군략상 필요한 지점을 임기 수용할 수 있다.
서울로 이동하는 일본군_1904년

 일본 해군은 팔구포(3.28), 백령도(4.3), 죽변(6.27), 원산(7.5), 부산․홍도(7.17)에 망루를 설치했다.

 러일전쟁 초기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수세에 몰렸던 러시아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5월 15일 여순항에서 구축함 하츠세(初瀨)호, 야지마(八島)호가 침몰했다. 순양함 요시노(吉野)호까지 잃은 이 날을 일본 함대의 블랙데이로 기록하고 있다. 6월 28일 수송선 사또마루(佐渡丸)와 사병 1,100명, 승조원 120명, 말 320필 여순 공격용 280mm 유탄포 18문을 실은 군용수송선 히타치마루(日立丸)가 침몰했다.

 블라디보스톡 함대에 의한 수송로 차단은 여순뿐만이 아니라 만주 주둔군의 고립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일본 해군은 남하하는 러시아 함대를 감시할 전략적 거점이 필요했다.
울릉도는 최적지였다. 8월 3일 동망루(현 도동)와 서망루(현 태하) 착공, 9월 1일 준공했다. 다음날 동망루에 하사 1명, 병사 1명, 통신수 2명 서망루에 하사 1명, 병사 5명을 배치했다.
동망루와 서망루는 1904년 9월 1일 준공, 북망루는 1905년 7월 16일 준공되었다.

 한편, 8월 24일에 니콜라이 2세가 참석한 특별위원회에서 발트 함대의 동해 파견을 결정했다. 이런 사실은 영국에 의해 일본에 전달되었다. 블라디보스톡 함대가 전열을 재정비하여 9월 22일에 출항했다는 첩보도 일본 군부에 전달되었다.
대한해협 봉쇄는 일본의 패전과 다름없어서 블라디보스톡 함대의 감시가 더욱 필요해졌다. 

 특히 동해를 종단하려는 러시아에 대해 울릉도와 오키 섬을 중간 거점으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려는 일본이 볼 때 독도는 반드시 차지해야 할 섬이었다.

 9월 24일 죽변과 울릉도 사이에 해저전선을 설치하던 군함 니이타카(新高丸)는 울릉도에서 독도에 대해 탐문하고 독도로 출발했다. 다음날 독도를 조사하고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겼다.
 “정상에 약간 평탄한 곳이 있다. 작은 건물을 짓기에 충분하다. 3곳에 샘이 있는데 그 양이 상당하고 연중 마르는 일이 없다.”
니이타카(新高)호, 러일전쟁 직전인 1904년 1월 27일 취역한 최신형 방호순양함이다. 1922년 8월 26일 좌초 침몰했다.배수량 3,366톤, 길이 102m, 폭 13.44m, 승조원 320명, ■무장:152mm 6문, 76mm 10문, 47mm 4문,

 일본 해군이 독도 망루 설치를 준비하던 9월 29일 나카이요오사부라는 어업가가 「량코도영토편입대하원」을 제출했다. 11월 13일에는 군함 대마호(對馬號)를 파견, 독도에 유선전신소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은 내무성이 요청한 비밀회의에서 나카이요오사부로의 대하원을 논의하고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할 것을 결정했다. 2월 22일에 독도를 시마네현 오키의 관할로 한다는 이른바 시마네현 고시 제40호가 제정되었다. 
내무성 비밀 문서 - 내각은 내무성의 요청에 따라 회의를 열도 독도가 무주지라는 이유로 편입결정을 하였다.


 7월 16일에 울릉도 북망루(현 석포)가 추가로 설치되었다.
울릉도 북망루 터와 일분 해군이 사용했던 우물터(오른쪽, 일제 강점기에도 진지로 이용되는데 이 당시 현장을 목격했던 주민의 증언을 통해 확인하였다)

7월 22일 해군 인부 38명이 독도 망루 공사를 시작했다. 8월 19일에 준공하고 하사 1명, 관측병 1명, 병사 2명을 배치했다. 이로써 모두  20개의 해군 망루가 설치 완료되었다. 
[죽도가설망루건설물배치도] 망루는 현 독도경비대 막사, 감시소는 현 독도 등대자리다.

[마이즈루진수부 소관 망루도] 울릉도와 독도 사이는 울릉도 동망루에서 관측이 가능하다.

 10월 16일 포츠머스조약이 발효되면서 러일전쟁이 끝났다. 독도 망루의 필요성이 없어졌으나, 독도를 강제로 편입했다는 국제사회의 의심을 살 수 있었다. 19일 독도 망루 철거가 결정되었다. 종전 4일 만이다. 11월 9일 죽변-울릉도 해저전선을 독도를 거쳐 마츠에(松江)까지 설치했는데, 사세보(佐世保)의 해군진수부까지 이어져 있다.
해저전선

 가와카미 겐조는 시마네현 고시를 나카이요오사부로의 강치잡이를 허가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에 따른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배경은 러일전쟁중 전략적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독도 망루 설치였다.

김점구(독도수호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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