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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06월18일 12시19분 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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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5 독도의용수비대
무기와 식량은 정부에서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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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일본은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나무 표식을 설치하고 우리 어민을 조사하는 등 침략행위를 일삼았다.

1953년 7월 울릉경찰서 독도순라반은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헤쿠라호'를 격퇴하였고 한국 정부는 9월에 독도에 돌도 만든 영토표석(5월20일
독도사랑 캠페인 #11 기사 참조)을 세워서라도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려 했다.

1954년 4월 울릉도 주민은 일본의 침략을 스스로 막아내기 위해 독도자위대를 결성키로 하고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정부의 지시에 따라 울릉군은 구휼미로 식량을, 울릉경찰서는 무기를 지급하기로 하였다.

1954년 5월 무렵(생존 대원의 증언) 10여 명의 상이군인이 독도에 상륙하면서 독도의 상주 경비가 시작되었다. 이 것이 독도의용수비대의 시작이다.
이후 정부는 독도 경비를 강화키로 하고 동도에 경비초사를 건립하였고 1954년 12월에 9명의 의용수비대원이 경찰관으로 특채되며 의용수비대는 해산되었다.
이후 경찰관으로 특채된 대원들은 독도경비대원으로 독도수호에 이바지하였다.

2004년 3월 독도수호대는 경찰청에 독도의용수비대를 독도경비대의 전신으로 기록해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경찰청은 독도의용수비대를 독도경비의 전신으로 기리겠다고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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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칠은 미역채취 수익금, 할아버지(홍재현)의 도움, 오징어판매 수익금과 사재를 털어 운영비를 마련했다고 수기에 적고 있다.
그리고, 홍순칠의 부인 박영희는 "군복을 빨고 꿰메어 입혔고 군복이 비싸서 옷감을 구입해 만들어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독도의용수비대 생존대원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의용수비대 운용에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무기와 식량은 울릉군과 울릉경찰서에 지급하였고 부식은 부인회에거 지원하였다.
군복 또한 대원 각자가 마련하여 착용 하였다.

따라서 홍순칠과 박영희의 주장은 허위이다.
만약, 홍순칠이 수기와 같이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였다면 실제 운용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백두진 총리가 독도자위대에 대한 협조를 지시했다는 당시 기사(1954.5.6. 조선일보)
 

독도 해상을 관측중인 독도의용수비대


독도경비대의 전신으로 기록하겠다는 경찰청 회신(2004.3.29)


독도의용수비대창설 50주년 기념식(2004년 국회귀빈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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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수호대 (tokdo@tokdo.or.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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