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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11월18일 10시52분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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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前 독도박물관장 사운 이종학 선생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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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23일. 사운 이종학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날이다. 2002년 11월 28일에 쓴 추모의 글을 일부 수정하여 다시 올린다.

수원시 연화장 장례식장 '추모의 집' 201호, 납골 번호 4998번

이곳은 이제 고인이 되신 사운 이종학 선생(1927.1.16~2002.11.23)이 잠들어 계신 곳이다. 지난 11월 23일 오후 1시 75세로 별세하신 선생은 초대 독도박물관장, 사운연구소 소장,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소장을 맡아 잘못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자료수집과 연구로 평생을 보냈다.

선생은 말만이 아닌, 근거자료 제시를 통해 일본인 스스로 독도가 한국땅임을 인정하도록 했다. 일본 시마네현청 관계자에게 독도를 한국 땅으로 기록한 자료를 제시해서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답을 이끌어낸 주인공이 바로 선생이시다.

선생은 일본이 독도를 한국땅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일본의 실증적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독도연구의 한 획을 그은 분이다. 선생이 평생 수집한 자료는 울릉도 소재 '독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독도박물관은 선생이 기증한 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이처럼 독도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선생은 독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을 남기고 가셨다. 그러나 선생의 큰 업적은 '재야 서지학자'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일본 시마네현과 일본 국회 등 곳곳을 이 잡듯이 뒤져 찾아낸 방대한 자료가 '보따리장수'의 봇짐 정도로 취급되기도 했다. 공개를 꺼리는 자료를 복사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 선생의 노력을 어떤 호사가는 트집거리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타협할 줄 모르는 선생의 성품이기도 하지만 증거가 명백한 자료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계의 배타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최초로 독도를 발견한 배는 프랑스 포경선 리앙꼬르(Liancourt)였다. 그러나 선생이 새롭게 찾아낸 자료에 의해 7개월 앞서 미국의 포경선 채로키(Cherokee)호가 발견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지금도 선생이 밝혀낸 체로키호는 리앙꼬르에 밀려 독도역사는 왜곡되고 있다. 선생이 업적은 이렇게 폄하되고 또 평가절하되었지만 선생의 업적을 빼놓은 독도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독도 없는' 선생의 마지막 가시는 길

내가 선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서지학자 이종학'이었고, 마지막 모습도 '서지학자 이종학'이었다. 수원성을 화성(華城)으로 바로 잡았다는 뉴스의 주인공으로 처음 알게 되었고, 독도박물관 관장은 두 번째 모습이자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3년 가까이 독도수호대(대장 김종대)에서 활동하면서 선생의 그림자를 벗어나서 독도를 얘기할 수 없었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독도와 관계된 모든 사람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24일 선생의 비보를 듣는 순간 홀로섬 독도가 내 머리에 가득 넘쳐났다. 나는 곧바로 선생과 뜻을 함께했던 분들께 선생의 부음 소식을 전하고 수원 아주대병원 영안실로 향했다.

선생을 모신 수국실은 슬픔과 비통함으로 가득차 있었고 사위와 조카가 상주로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영안실은 선생의 영정을 중심으로 관계기관에서 보낸 조화가 자리 잡고 있었고, 입구에도 하나둘 더해져 갔다.

선생은 말이 없었지만, 조문객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선생의 걸어온 길을 웅변하고 있었다. 독립기념관에 기증하기 위해 2천 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고지도를 구입하였고, 동학농민전쟁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자료를 관련 기관에 다수 기증하기도 했다.

일본의 불법적인 강제 합병을 증명하는 자료를 북한에서 전시하고 많은 자료를 기증하기도 했다. 그리고 독립기념관과 독도박물관의 자료는 선생의 자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할 만큼 선생의 연구성과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선생의 수많은 업적 가운데서 가장 많이 얘기된 것은 단연 독도와 독도박물관이었다.

그러나 선생이 가시는 마지막 가시는 길 어디에서도 독도를 위해 평생을 바친 선생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독도박물관 초대 관장보다 '재야 서지학자 이종학'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모습뿐이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한국 땅이라는 수많은 자료를 발굴하고 독도박물관 초대관장을 지냈던 선생은 '서지학자 이종학'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독도박물관장, 경상북도지사, 울릉군수가 보낸 조화가 그나마 독도의 흔적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독도와 관련한 조문객으로는 국방대학원 김병렬 교수, 독도수호대 김종대 대장, 해양연구소 김윤배 연구원 등 몇 명만이 선생의 마지막을 함께 했을 뿐이다.

국가나 사회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고인을 위해 사회적으로 치르는 장례가 사회장이다. 선생은 독도와 국가에 누구 못지않은 공적을 남기신 분으로, 사회장은 형식이 아니라 우리가 고인에게 바치는 최소한의 예의와 경의의 표현일 것이다.

수원시민장, 경기도민장 등 사회장에 대해 논의를 하고 경기도지사와의 연락을 취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빈소에 모인 몇 사람의 의지로는 실현할 수 없는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그나마 독도박물관이나 울릉군에서 장례에 관한 논의가 있었기를 기대했지만, 빈소로 오고 있는 독도박물관장의 대답은 기대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23일 운명하신 선생의 장례에 대해 분향소 설치 외에 아무런 준비도 없다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결국, 빈소의 몇 사람만 참가하는 장례위원회를 꾸릴 수도 없어 사회장은 포기하고 가족장으로 치루기로 했다. 그리고 독도수호대가 추모기간을 정하고 사무실과 홈페이지에 분향소(www.tokdo.co.kr)를 차리기로 마무리를 지었다. 독도수호대는 31일까지 추모기간을 정하고 사무실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선생의 영원한 안식처 독도박물관

선생은 평소에 독도박물관 앞 양지바른 곳에 묻히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까다로운 장례법의 규정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래서 부득이 하면 독도 주변 바다에 뿌려 달라고 하시기도 했다.

선생의 유지대로 독도박물관 앞에 모시기 위해서는 울릉군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행정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울릉군청은 독도박물관에 분향소 설치 외에 선생의 장례후 절차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하지 않았다. 23일이 선생이 별세한 날인데 오늘까지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울릉도에 가면 항상 듣는 얘기가 '서울 촌것들이 독도를 위해 무엇을 했나?'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독도보다 울릉도의 독도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울릉도의 적극적인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울릉군 문화원과 대한노인회 울릉지회를 중심으로 기념비 설치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선생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준비중에 있다. 독도박물관과 울릉군의 적극적인 행정적인 지지와 울릉군민의 추모열의만 있다면 선생의 유지를 받드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독도박물관의 관리청인 울릉군청은 지금이라도 독도박물관 앞에 묻히시길 원한 선생의 마직막 소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선생의 마지막 가르침

고 사운 이종학 선생의 장례 기간에 우리는 선생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은 마지막까지 독도 사랑이 무엇인지 큰 가르침을 주시고 가셨다. 그것은 고인의 마지막도 함께 하지 못하게 했던 그 무엇의 존재를 확인해주신 것이다.

독도에 대한 생각이 다르면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매도하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타 단체의 대표를 험담과 모략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정부와 관계없는 세계적인 과학적 자료도 정부가 숨기고 있다는 억지를 부리며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시민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전문가 그룹은 서로 뭉치지 못하고 비방과 비난을 반복하고 있다. 자신이 잘 모른다고 하면서도 독도와 관계가 없는 것을 견강부회하여 문제화하려고 하기도 한다. 갈 수 있는 땅도 자신이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못 가는 섬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객관적 자료를 제시해 국민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기보다 한쪽의 주장만 내세우며 사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정부와 같은 주장을 하면 이유는 알아보지 않고 정부대변인으로 친일매국으로 매도하기에 바쁘다.
한번 굳어진 잘못된 시각은 어떠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감정에 치우쳐 현실을 무시한 주장만 반복되고 있으며 문제만 있고 대안은 없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우리 스스로 반성하여야 할 문제이고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독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편향되게 굳어져 있다. 독도문제라는 시각을 통해서만 독도를 바라볼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독도영유권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 나쁜 놈' '독도를 팔아먹은 정부'를 빼고 나면 더 이상 독도에 대해 말을 할 수가 없다. 비행기와 함포를 기관총과 소총으로 막겠다고 나선 독도의용수비대의 나라사랑 정신은 말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독도문제로 이야기되는 독도를 버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독도는 죽어야 한다. 독도가 새롭게 태어날 때만이 독도는 영원한 우리의 영토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독도문제에 일본은 없다. 우리의 독도문제에 정부와 국민의 대립만 있을 뿐이다. 일본의 망언에 대해서는 기다렸다는 듯한 천편일률적인 대응이 이루어지고 며칠 후 일상을 되찾는다.

기계화된 언론의 대응과 이어지는 집회와 시위는 분노를 냄비 끓듯이 달아 오르게 하지만 금세 사그라지고 만다. 그리고 일본의 주장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대명제에 눌려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전락하고 만다. 일본의 주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의 주장은 무엇인지는 알아보지 않는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대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신라장군 이사부, 세종실록 지리지, 안용복 장군을 언제까지 되뇌고 있을 것인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한마디 말로 독도는 지킬 수 없고 대명제를 증명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일본의 주장을 감정으로 이길 수 없음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며 이종학 선생은 이를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이다. 정부와 국민의 대립으로 변질된 독도문제의 본질은 바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홀로섬' 고 이종학 선생님, 독도에서 고이 잠드소서…….

선생의 업적은 한국땅으로 표기된 지도와 비밀문서의 발굴보다 독도문제의 본질을 일본으로 보셨다는 것이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선생의 연구 업적은 역사적인 증거뿐 아니라 국제법적인 이론의 증명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논리적인 국제법적 이론도 역사적 자료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생이 남기고 간 빈자리가 더욱 커지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빈소에서 들은 한마디는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선생이 학계에서 활동하셨다면 후학들이 이 자리에 함께 했을 텐데……."

유품으로 남은 자료는 언젠가 정리되겠지만, 선생이 평생 쌓아온 경험은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선생을 '보따리장수'가 아닌 독도수호운동의 동반자로 받아들이지 못한 우리가 치러야 하는 업보가 아닐까?

동해에 외로이 떠있는 독도처럼 평생을 홀로 보내신 '홀로섬' 고 사운 이종학 선생님 독도에서 고이 잠드소서. 선생님의 높은 뜻 고이 받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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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구 (go2sky@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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