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소개

울릉 관광길라잡이, 신비의 섬 울릉도
뉴스일자: 2000년01월01일 02시12분

◕ 면적 : 72.82km2(경상북도의 0.4%),  동서직경 10km, 남북직경 9.5km, 섬둘레 56.5km, 임야 76%, 농경지 18%, 기타 6%

◕ 지형 : 화산암의 오각형섬(해안선길이 56.5km), 성인봉(해발 984m)을 중심으로 분수령 형성, 산악은 험준하고 나리분지 외 대부분 경사지로 형성

◕ 도서 : 44개섬(유인도4, 무인도40)

◕ 기후(해양성기후 - 여름은 시원, 겨울은 온난, 평균기온 12℃) 
울릉기상대 자료

◕ 3무(無)5다(多)의 섬
   ▪ 3무 : 도둑, 공해, 뱀
   ▪ 5다 : 水(물), 美(미인), 石(돌), 風(바람), 香(향나무) 

◕ 자연보고 - 신비의 섬 
   ▪ 동물(조류) : 흑비둘기 등 62종(텃새24, 철새38) 
   ▪ 식물 : 향나무, 후박, 동백 등 650종(수목194, 초화456) 
   ▪ 용출수, 원시림 등 자연자원 풍부

◕ 특산물 : 오징어, 호박엿, 돌미역, 향나무제품, 청정해산물(전복, 해삼, 소라, 돌김 등), 산나물(명이나물, 삼나물, 고비, 부지갱이, 미역취 등)

◕ 울릉팔경
   ▪ 도동모범(暮帆) - 도동항 석양 오징어배 출어 모습
   ▪ 저동어화(魚火) - 저동에서 바라 본 오징어잡이 불빛
   ▪ 장흥망월(望月) - 사동에 뜨는 달
   ▪ 남양야설(夜雪) - 겨울철 달밤 남양의 눈꽃
   ▪ 태하낙조(落照) - 태하의 저녁 해지는 모습
   ▪ 추산용수(湧水) - 추산에 솟는 물
   ▪ 나리금수(錦繡) - 나리동 비단 단풍
   ▪ 알봉홍엽(紅葉) - 알봉의 붉은 단풍

◕ 울릉도 명소 소개
   ▪ 도동  고종 19년(1882년) 울릉도 개척령 발표 이후 개척민들이 많이 모여 번화하므로 도방청(都房廳)이라 하였으며, 그 후 도동(道洞)이라 하였다.
   ▪ 사동(沙洞)  이 마을 뒷산의 형상이 사슴이 누워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와록사(臥鹿沙)라고 하였으며, 혹은 옥(玉)과 같은 모래가 바닷가에 누워 있다는 뜻에서 와옥사(臥玉沙)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 사구미  도동에서 저동으로 뻗은 마치 큰 뱀과 같은 지세의 입구 ‘뱀아귀’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여 사구미라 불린다.
   ▪ 모시개(저동)  개척당시 이곳에 모시(저:苧)가 많은 갯벌이라 하여, 모시개 혹은 저동이라 불린다.
   ▪ 내수전(內水田)  울릉도 해맞이 명소인 내수전은 닥나무가 많이 자생해서 저전포라고도 했다. 울릉도 재개척 당시 김내수라는 사람이 밭을 일구어 화전을 하였는데, ‘김내수가 화전화던 곳’이라는 뜻에서 내수전으로 불린다. 울릉읍 지역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공급하는 내연발전소와 약수터가 있다. 내수전 앞 해수욕장은 주위 풍광이 좋아 여름철 해수욕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야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 내수전 일출전망대  내수전 일출전망대에서 죽도, 관음도, 섬목이 한 눈에 보인다. 넓게 뻗은 수평선과 청정한 바다를 보며 가슴이 확 트이는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저동항을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 내수전→석포 트래킹코스  울릉도의 일주도로 가운데 유일한 미개설구간(4.4km)이다. 저동 내수전 약수터 위로 개설된 군도 1호선을 따라 북면 석포마을까지 이어진다. 중간에는 작은 계곡과 때로는 넓은 바다와 죽도와 관음도를 볼 수 있으며 산세가 수려하고 자연경관이 뛰어난 코스다. 내수전 일출전망대와 석포마을 중간쯤에 정매화곡쉼터가 있어 쉬어가기엔 제격이다. 특히 산악자전거를 이용하기 좋은 코스. 석포마을 앞에서 관음도와 일주도로의 해안절경을 감상할 수 있고, 가을에는 억새가 아름다운 곳이다.
   ▪ 정들포(석포石浦)  개척당시 주민들이 정착한 후 수년간 살다보니 정이 들어 외지로 이주할 때 울고 갈 정도로 정이든 곳이라 하여 정들포라 하며, 후에 돌이 많다 하여 석포라 하였다.
   ▪ 삼선암  삼선암은 멀리서는 2개로 보이지만 3개의 바위로 구성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의 빼어난 경치에 반한 세 선녀가 목욕을 하다가 돌아갈 시간을 놓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울릉도의 3대 절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 섬목  정들포 동쪽에 산이 바다로 뻗다가 중간이 끊어졌다가 다시 일어서서 관음도(깍새섬)이 되는 모양으로, 꼭 섬의 목과 같다고 하는데서 유래한다. 울릉도 일주도로의 끝 부분이다.
  ▪ 예선창(천부天府)  울릉도 재개척 당시 개척선이 와 닿은 항구로 지금도 울릉도에서 가장 좋은 항구이다. ‘옛 선창’골, 즉 예선창으로 불린다. 혹은 조선시대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배를 만들고 울릉도의 나무를 도벌해
갔다하여 왜선창(倭船艙)이라 부른데서 유래한다.
   ▪ 나리분지  면적 1.5~2.0km2(60만평), 동서 약 1.5km, 남북 약 2km로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이다.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화구원이다. 그 안에 분출한 알봉(538m)과 알봉에서 흘러내린 용암에 의해 다시 두 개의 화구원으로 분리되어 북동쪽에는 나리마을, 남서쪽에는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알봉마을이 있다.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았으나 조선조에 이르러 공도정책으로 수 백년 비워두다가 고종 때 개척령에 따라 개척민들이 이곳에 왔다. 사람들이 산에 자생하는 많은 섬말나리(나리과의 풀) 뿌리를 캐먹고 연명하였다하여 나리골이라 부른다. 개척당시 울릉도의 제1의 집단마을이었다. 투막집, 너와집, 울릉국화, 섬백리향군락, 원시림을 볼 수 있으며 야영장이 있다. 야영장을 지나 계곡을 따라가면 용출소와 수력발전소가 있다.
   ▪ 투막집  투막집은 섬에서 많이 나는 솔송나무와 너도밤나무를 우물정자 모양으로 쌓고, 틈은 흙으로 메워 자체 온습도 조절이 가능하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한 것이 특징이다. 나리분지에 너와집 1곽, 투막집 4곽을 도지정 문화재로 보호하고 있다.
   ▪ 너와집  울릉도의 흙냄새 나무냄새가 물씬 풍기는 향수 어린 집이다. 개척민들의 전통 주거양식으로 육지에서는 귀틀집이라고도 부른다.
   ▪ 가문작지(현포玄圃)  대풍감에서 노인봉까지 약 15리나 되는 해안선이 가마득하게 보인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일설에는 이곳에 검은흙이 많다고 하여 현포라 불린다고도 하고. 혹은 등대암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이 검게 보인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18세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의 울릉도 부분을 보면 이 지역에 석장 20여 기와 탑이 있는 사찰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는 이곳에 촌락지 7개소와 석물, 석탑 등이 있었다고 하며 성지, 나선장, 선돌과 같은 유물, 유적이 많아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정하고 있다.
   ▪ 현포리 고분  경상북도 기념물 73호로 완만한 경사면에 10여 기가 분포해 있다. 석총 양식의 무덤은 기단으로 조성하고 가운데 장방형 돌방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한 후 그 위에 돌을 쌓아 봉분을 만든 것으로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큰황토구미(태하동台霞洞)  황토가 많이 나는 모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태하는 김(해태)이 많아서 혹은 안개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규원 일기에는 ‘대황토구미’라고 적혀있으며 일제시대에 태하로 불렸다. 조선시대에 태하에 있는 황토굴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까지 되었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삼척 영장을 이 섬에 순찰을 보냈는데 순찰의 증거품으로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받았다고 한다.
   ▪ 태하리 광서명각석문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음각한 것으로 울릉도 개척 무렵 공이 많은 사람들의 공덕을 기리고자 1890년 4월 오위장을 지낸 손주영이 세웠다.
   ▪ 성하신당  조선 태종 때 삼척인 김인우는 울릉도 안무사를 명받아 울릉도 거주민의 쇄환을 위하여 병선 2척을 이끌고 태하동에 도착했다.
관내 전역에 대한 순찰을 마치고 출항을 위해 잠을 자던 중 해신이 현몽하여 일행 중 동남동녀 2명을 이 섬에 남겨두고 가라고 했다.
안무사는 일행 중 동남동녀 2명을 섬에 남겨두고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갔다. 몇 년 뒤 다시 울릉도 안무사의 명을 받고 태하동에 도착하여 수색을 했는데, 그때 유숙하였던 곳에서 동남동녀가 꼭 껴안은 형상으로 백골화되어 있었다. 안무사는 동남동녀의 고혼을 달래고, 애도하기 위해 그곳에다 사당을 지어 제사지내고 돌아갔다.
그 후 매년 음력 3월 1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풍어, 풍년을 기원하고 선박의 진수가 있으면 반드시 여기에서 제사를 올려 해상작업의 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 대풍감(待風坎)  태하에서 현포로 배를 타고 가려면 등대 부근의 산에 구멍이 있는데 이 지역에서 세찬 바람을 기다려 돛을 올려 항해를 해야 가능하다해서 불리는 이름이다.
   ▪ 학포(鶴圃)  1958년경 학의 부리 부분이 비, 바람에 떨어져지고 몸통만 남아 있다고 한다. 마을 뒤편 바윗산에 학이 앉아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사자바위  신라왕은 강릉군주 이사부를 보내어 우산국 토벌길에 올랐다. 신라군은 군서의 뱃머리에 목사자를 싣고 있었다. 목사자로부터 불을 뿜으며 이 짐승을 풀어 섬사람을 몰살시키겠다고 하자 우산국의 우해왕은 투구를 벗고 신라의 이사부에게 항복했다. 우산국은 멸망했지만 전설은 남아 그때의 목사자가 사자바위로, 우해왕이 벗어 놓은 투구가 지금의 투구봉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특히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다.
   ▪ 통구미  양쪽으로 산이 높이 솟아 골짜기가 깊고 좁아 마치 긴 홈통과 같다고 하여 통구미(桶邱尾)라 하였으며, 또한 거북 모양의 암석이 마을을 향해 기어가는 듯 한 것을 보고 거북이가 들어가는 통과 같다고 하여 통구미(桶龜尾)라고 하며,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통구미(通九味)라고 표기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행남(해안산책로)  도동부두 좌해안을 따라 개설된 산책로가 절경이다. 자연동굴과 골짜기를 연결하는 교량 사이로 펼쳐지는 해안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해안산책로는 행남이라는 마을과 이어진다. 이 마을 어귀에 큰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고 해서 살구남으로도 전해오고 있다. 마을에서 400정도의 거리에 있는 행남등대는 먼 뱃길을 밝혀준다. 해송 사이로 이어지는 등대 오솔길은 가을철에 노란 털머위 꽃이 군락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등대에서는 저동항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 1912년, 울릉도에 2,018명의 일본인이 살았다
일본은 1902년 3월에 울릉도 거주민 보호라는 명목을 내세워 부산, 일본 영사관의 경부 1명과 순사 3명 등 4명의 경찰관을 울릉도에 파견 상주시켜 일본경찰관 주재소를 도동에 설치하였다. 1906년 조사에 따르면, 울릉도 전체 6,464명 가운데 541명이 일본인 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대한제국은 일본공사에게 울릉도 경찰 주재가 조약 위반임을 강력 항의하였지만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일본인의 울릉도 거주를 계속 장려하였다.
이러한 장려의 결과로 1912년에는 울릉도 전체인구의 23%가량인 2,018명의 일본인이 울릉도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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